2013년 2월 28일 목요일

0227 미성동 1주기, 0228 니키 6주기



2월27일(수). 미성동(구 신림11동)으로 이주한지 딱 1년 되는 날(엮인글). 자축하지 않고 무탈하게 하루를 보냈다.

1년 살아 본 새 주거지의 단점은 부실하게 신축한 건물의 소음(최고층인데 아래층 소음까지 들림)과 각종 음식을 파는 방송차량의 확성기 소음이 유별나며, 강북 도심(광화문 일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에 살던 집에서 층간 소음 스트레스를 1년 이상 겪은 터여서, 새 집에서마저 예상 못한 일을 만나니 한동안 부담이 컸지만 익숙해지니 견딜 만하다.  
장점은 재래시장 두 곳과 가까워서 식자재 사러 시장 가는 재미가 있는 점,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는 일은 전혀 없으나 호림박물관 뒷산 산책로가 가깝다는 점이다. 


2월28일(목). 니키 죽은지 6년 된 날. 매년 묻어둔 집에 갔으나 올해부터는 가지 않으련다. 다른 일정도 있지만 그보단 마음 속으로 언제나 기억하고 있으면 되었지 싶어서다.  




5일 동안 맡아줬던 남의 집 흰큰개 때문에 호림박물관 뒷산을 함께 비자발적으로 산책했던 지난 1월 중순 광경. 
낮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관악구 일대가 내려보인다.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DJ 수칙


[왜냐면] 대통령의 ‘수칙’ / 김한정



등록 : 2013.02.25 19:29수정 : 2013.02.26 11:14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는 어떤 대통령이 될까? 축하와 기대의 마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당선된 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국민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내각이나 비서진 인선 과정도 그랬고, 대선 공약이 후퇴한 데 대한 해명도 거의 없었다. 나 홀로, ‘묵비권 정권’이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희망의 새 시대를 힘주어 말했다. 국민은 새 대통령이 잘해줬으면 하는 소박한 심정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잘해야 국민이 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은 고달픈 자리다. 좋은 일보다는 골치 아픈 일들이 더 많다. 국민을 믿고, 반대자를 포용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결연한 각오와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로 오래 그를 곁에서 지켜봤다. 김대중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을까 생각해 봤다.김 대통령은 오랜 기간 고초와 모욕을 받았고, 심지어 감옥살이와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김 대통령은 1997년 말 외환위기로 파산지경에 놓인 나라를 넘겨받았다. 당선된 날부터 하루하루 긴장의 나날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였다. 준비된 대통령이었지만 준비된 정권인수세력은 갖고 있지 못했다. 당선의 기쁨은 잠시이고, 막중한 책임만 앞에 있었다. 강한 인내심에 정치적 경륜이 오랜 그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그래서인지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각오-‘수칙’이라고 썼다-를 종이 한 장에 써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김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일기 형식의 국정노트를 썼는데, 이 ‘(대통령) 수칙’은 퇴임 직전 통치 사료를 정리하다가 내가 발견한 것이다.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김 대통령의 개인적 메모이므로 표현은 감안하시기 바란다.

-수칙-

1. 사랑과 관용, 그러나 법과 질서를 엄수해야
2. 인사 정책 성공(의 길은) 아첨하는 자와 무능한 자를 배제
3. 규칙적인 생활, 적당한 운동, 충분한 휴식으로 건강 유지
4. 현안 파악 충분히, 관련 정보 숙지해야
5. 대통령부터 국법 엄수의 모범 보여야
6. 불행한 일도 감수해야 한다. 다만 최선을 다하도록
7. 국민의 애국심과 양심을 믿어야. 이해 못 할 때는 설명 방식을 재고해야
8. 국회와 야당의 비판을 경청. 그러나 정부를 짓밟는 것은 용납 말아야
9. 청와대 이외의 일반 시민과의 접촉에 힘써야
10. 언론의 보도를 중시하되 부당한 비판 앞에 소신을 바꾸지는 말아야
11. 정신적 건강과 건전한 판단력 견지해야
12. 양서를 매일 읽고 명상으로 사상과 정책 심화해야
13. 21세기 대비를. 나라와 국민의 미래 명심해야
14. 적극적인 사고. 성공의 상을 마음에 간직
15. (생략… 개인의 신앙 관련)

김 대통령의 ‘수칙’에는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하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다. 그런 각오로 열심히 일했지만 크고 작은 실수들이 있었고, 퇴임을 앞두고는 국민의 서운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새 대통령이 이런 고생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 대통령의 ‘수칙’도 한번 보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빈다.

김한정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대통령 전용차, 빌바오미술관, 캣워킹 (씨네21)


* <씨네21>(893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7회분. 취임식 어제 열리지만 않았어도 오바마를 대타로 쓰진 않았을 수도.
  

같은 듯 다른 압도적 쇼쇼쇼




좌상. 미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 2013년
좌하. 네르비온 강변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우. 런던 패션위크(LFW) SS13에서 팸 호그 Pam Hogg의 의상 2012년




대통령 전용차는 암살을 방어하려고 설계된 무거운 차다. 그렇지만 케네디는 덮개 없는 리무진을 타고 퍼레이드를 도중 오스왈드가 쏜 저격탄을 피하지 못했고, 레이건은 리무진 안으로 급히 피신하기 직전에 몸에 총알 한발을 맞았는데, 다름 아닌 리무진 차체에 ‘박히지 못해서’ 튕긴 유탄이었다. 결론적으로 방어 임무에 모두 실패한 셈인데, 대통령 리무진의 본질은 요인 보호보다 공중을 제압하는 차체의 공격적 외형에 집중되어있다. 내부를 응시하기 힘든 어두운 방탄유리와 검정 철갑을 뒤집어 쓴 차체는 겉으로는 중후함을 과시하지만 속내를 은폐하기 때문에 신비감을 증폭시키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래서 대통령 전용차는 차라리 대통령과 동격이다.

유수의 미술관들마다 각기 독창적인 외관을 자랑하지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중에 으뜸일 것이다. 은빛 티타늄 철갑을 감싼 이 예술의 전당의 본질은 작품을 보호하고 전시하는 초대형 수장고에 있지만, 해체된 형태로 재구성된 외관이 미술관의 기능을 대리한다. 중세 성곽의 현대판 혹은 신성하고 공격적인 전함을 빼닮은 이 명승지를 찾아 연간 100만여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그들은 철갑에 가려 볼 수 없는 내부의 미술품이 아닌 그것을 가리고 있는 중후한 덮개를 한동안 관람하다가 돌아가지만, 미술품 감상과 대등한 감명을 받는다. 

기능주의보다 신비주의에 비중을 둔 대통령 전용차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형은 일상적 기능주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패션쇼에서 볼 수 있는 비현실적 의복에 빗댈 수 있을 거다. 그것이 제시되는 방식마저 유사하다. 대통령 전용차가 만인에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시점은 국가 통수권이 주어지는 취임식이라는 상징적인 날이다. 리무진 주변을 겹겹으로 에워싼 무장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느리게 이동하는 대통령 취임 차량 퍼레이드와 패션쇼의 캣워크는 양편에서 지켜보는 도열한 관객 사이로 도로나 런웨이를 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으로 요약된다.

패션쇼는 일상에서 사실상 착용 불가능한 무수한 의복들을 선보이는데, 몸에 걸칠 옷을 고르는 자리가 아니라, 특수한 미적 감각을 확인하고 연대 의식을 나누는 계급적인 사교장에 가깝다. 일상적 의복의 기능성이 제약해온 한계들을 최대한 걷어내면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의 최대치를 사심 없이 바라보는 자리가 패션쇼 미학의 본질일 것이다. 압도적이고 중후한 외관에 의존하는 점에선 패션쇼와 유사한 모양새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상대로 선보이는 대통령 취임식 퍼레이드는 실상을 숨기는 가면쇼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그 어떤 권위로도 형편없는 내실을 가릴 순 없게 된다. 국정운영은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거든.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바뀐 모양?

며칠 전부터 낮밤이 바뀌어 정오께 기상하는데, 자고 일어나니 국정운영자가 바뀐 모양이네.

0207 케이크나누기(팔레드서울) 문왕진(space15) 0208 팀버튼(서울시립) 0215 ( )를 위한 무대(인미공) 0217 김수연(갤러리2) 0219 회의+심사(세종문화회관)


0207(목) 
'그들이 버틸 수 있을때까지.. 갤러리 습격사건Ⅰ- 케이크 나누기(2013.0112~0207 팔레드서울)
문왕진 '개인전' (2013.0207~0224 Space15) 
0208(금)
팀 버튼 (2012.1212~2013.0414 서울시립미술관

0215(금)
'( )를 위한 무대' (2013.0215~0316 인미공) 

0217(일)
김수연 'Shadow Box' (2013.0117~0217 갤러리2)

0219(화)
회의 (11시 세종문화회관)
심사 (14시 세종문화회관)


케이크나누기(팔레드서울)


블로그 방문자가 추천한 전시였음. 영화 시사회를 보고 이동해서 찾아감. 현장 외곽에서 생활하는 자의식이 강한 미대 출신자라면 이런 자조적인 주제를 다룬 전시에 큰 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문왕진(space15)


작년 제자 문왕진의 개인전


팀 버튼 (서울시립)

 시사인에 기고한 리뷰보기 



( )를 위한 무대(인미공)


재작년 제자 김태현의 전시 공동기획. 


김수연(갤러리2)



재작년 제자의 개인전. 작업에 관한 각주 달기 같은 작업. 


회의+심사(세종문화회관)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고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 내리는 사람으로서 조직생활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자리.  


폭설 와인 동물카페 분양광고

 2월4일(월) 두툼한 눈 두께를 가늠하게 해준 제설 작업. 겨울엔 더 춥고 여름엔 더 덥고. 양극화된 한국 기후.


 2월4일. 작년 추석 연휴에 이어 다시 한번 A출판사의 배려. 잘 마시겠습니다. 

 2월8일(금) 명동. 동물카페가 있나봄. 

2월21일(목) 거주지 맞은 편에서 고작 몇달의 공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옛가옥이 사라지고 분양 건물 한동이 우뚝 들어서더라. 이렇듯 신속하게 집짓는 문화가 자리잡아서야...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팀 버튼 전시_ 서울시립미술관 리뷰 (시사인)



금주 <시사인>(제284호/2013년 02월 23일)에 실린 팀 버튼 전시 리뷰. 전시 관람은 2월8일(금). <시사인>의 편집팀에서 원고 제목을 '<팀 버튼>전, 인상적인 습작들' 로 뽑은 것 같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위악적으로 입을 쩍 벌린 캐릭터로 장식된 전시장 입구를 통과하면, 길게 줄지어 선 관람 대열이 기다린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찾았지만 예상 밖의 인파로 관객으로 빽빽한 대열 사이에 끼어 느리게 이동하며 전시를 봐야했다. 가족 단위 방문을 유도하는 블록버스터 전시회는 상투적인 공식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방학 시즌에 맞춰 개막일을 정해 4달 내외의 전시 기간을 소화하며 초대작의 품질보다 예술가의 지명도에 의존한 마케팅을 한다. 대표작 서너 점만 포함된다면 모네와 반 고흐처럼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전 근대기 간판급 화가나 피카소와 앤디 워홀처럼 ‘이제는 구시대에 속할’ 현대 미술 스타의 이름만 앞세우면 관객 동원에 큰 하자가 없던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팀 버튼>전은 블록버스터 전시가 고수하는 안정 공식에 덧붙은 일종의 플러스알파처럼 보인다. 대박 전시물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지 않은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장르적 사고방식으로 시각예술을 분류하던 관성에 제동을 거는 동시대성이 투영된 전시 같아서다.

블록버스터를 포함한 모든 미술 전람회가 궁극적으로 예술가의 대표 완성작 관람으로 귀결된다면, 세 편의 배트맨 영화를 연출 혹은 제작하고 <가위손> <화성침공> <다크 섀도우>등을 찍은 이 기괴한 취향의 영화감독 전시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성작을 관람하는 전시가 아니다. 무명 시절의 <빈센트>와 1984년판 <프랑켄위니>(2012년 개봉한 영화의 원형이다)라는 영화를 전시회에 공개했다지만, 이 세칭 희귀본들은 모두 유튜브에 이미 등록된 형편이어서 희소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팀 버튼>전은 영화감독의 일대기를 정리한 회고전이 분명하되, 완성작(팀 버튼의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의 완성 과정에 기여한 무수한 습작과 수련을 자료의 열거로 증언하면서 팀 버튼의 영상 세계를 조망한다. 그래서 회고전을 표방하되 대표작은 볼 수 없는 전시회인 거다. 하물며 팀 버튼의 영화 세계를 접할 거라면 손쉽게 다운받아서 보면 되지 세상이다. 

<팀 버튼>전의 출발지는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이다. 뉴욕 전시를 마치고 멜버른 토론토 로스앤젤레스 파리를 순회한 후 서울에 당도한 것이 이 전시의 내력이다. 전 세계를 순회한 전시의 포맷은 유사하다. 700점 이상(국내 전시는 862점)의 출품작은 무명시절부터 영화계 전설로 대접받는 현재까지 팀 버튼의 영화를 저변에서 지탱시킨 소묘, 회화, 사진, 스토리보드, 인형, 의상 그리고 영화 소품들로 채워졌다. 또 전시장 내 외부에 팀 버튼이 고안한 귀여운 캐릭터를 거대한 풍선으로 만들어 세워두거나 전시장 입구를 입 벌린 캐릭터로 대체한 점도 동일하다. 팀 버튼마저 자신의 전시를 두고 “더 큰 그림(영화)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으로 제작한 자료들이라 “세상에 공개되리라고는 여기지도 못했다”는 심경을 밝혔을 정도다.





프랑스 시네마테크 전시 장면(2012)


예술가의 결과물로 전시회의 승패를 가늠하던 방식에 비하면, 거의 전적으로 결과물을 향한 긴 노정을 탐사하는 전시회의 성격 때문에, 전시장에 놓인 800여점의 앙증맞고 낯익은 캐릭터와 신기한 영화 소품들만 둘러보다가 나온다면 관전 포인트를 제한적으로 잡은 꼴이 된다. 전시실마다 팀 버튼의 기괴한 미감을 증언하는 대동소이한 모양새의 조형적 습작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괴이한 20세기 초반 표현주의와 고딕 취향은 시대감각에 맞게 조율되어 캐릭터에 입혀진다. 심지어 <비행접시와 외계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15세기 북유럽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현대적 SF로 각색하고 재구성한 것이었다. 팀 버튼 영화 속 등장인물이 그렇듯이 전시장에는 도드라지고 큰 눈알, 섬뜩함은 사라진 귀여운 해골, 큰 두상에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팔다리의 신체, 바늘 봉합 자국이 선명하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는 흉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무수하게 출연하는 캐릭터가 이미지와 소품의 형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다만 이 친숙한 도상들도 전시 동선을 따라 연거푸 대면하면서 지루해지기 마련. 때문에 나열된 작품을 타성적으로 바라보는 관전법을 버릴 필요가 있다. <팀 버튼>전은 결과적으로 한 예술가의 완성품의 제시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시야 밖에 이뤄진 노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데 방점이 찍힌 바, 그 숨은 노고에 주목해야 맞다. 내게 정작 자극이 된 진열품은 관객의 호기심을 낚는 희귀한 영화 소품이나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가 무명시절부터 현재까지 틈틈이 쌓아올린 육필 기록과 습작의 더미가 그것이다. 개중에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가 우연히 떠오른 심상을 소묘로 남긴 것으로 보이는 냅킨 90장이 액자 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또 진열 중인 팀 버튼의 소지품 가운데에 스프링이 부착된 소형 스케치북도 눈에 들어온다. 어딜 가건 착상이 떠오르면 붙잡아두려는 습관의 산물로 보인다.

팀 버튼의 대학 전공이 캐릭터 애니메이션이어서 그의 영화세계와 연결 지점이 많긴 하더라도, <팀 버튼>전은 매해 배출되는 무수한 졸업생들이 뾰족한 진로를 못 찾는 악순환에 빠진 전국 미술 대학에게는 각별히 고무적인 체험장이 될 것 같다. 영화가 본업이어도 팀 버튼과 그의 영화는 당대 문화 예술의 대세를 지켜볼 수 있는 창처럼 느껴졌다. 영화감독의 회고전이 미술관에서 개최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팀 버튼의 영상 미학이 전 장르를 포괄하면서 전개된 배경 탓일 것이다. 미술은 긴 전통과 제도적인 보장 덕에 향후에도 존속하는 예술로 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대 미술에 미디어아트 쏠림이 나타나는 사정이나 시각예술이 영상예술로 기우는 시대 미감에 관해서 전공자라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의 영화가 장르를 포괄하는 통합적 결과임을 보여줌으로써, 종합예술 본진으로서의 자신감이 <팀 버튼>전에 배어있다. 그의 영화와 인연을 맺은 잠재적인 영화팬이 전시회 관객으로 충원되었을 것이다. 기념촬영지로 마련한 듯한 팀 버튼 캐릭터로 장식된 미술관 벽면으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인파를 지켜보자니, 동시대와 호환하는 시각예술의 실체를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냅킨 위 메모





2013년 2월 19일 화요일

0219 이디도


알람 기상에 실패해서 화들짝 놀라서 깨어나, 오전에 잡힌 약속에 맞추려고 바람 찬날 자전거로 노량진역까지 이동해서 지하철로 환승한 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정확히 딱 10분 지각. 밤잠을 못잔 상태에서 1시간만 보충하려다가 벌어진 실수. 
오전 오후의 일들을 모두 마친 후 귀가하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음. 

약속에 늦어 긴장 상태로 자전거를 몰았음에도 바람의 냉기를 느낄 만큼 오늘 날씨는 찼다.   
일마치고 귀가해서 한숨 돌린 후 다시 외출해서 원두를 사는 보라매병원 앞 '한주하의 커피볶는집'에서 더치 커피를 2병 삼.

이디도는 선호하는 원두 품종인데, 내가 집에서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랑 제공 받은 이디도의 맛과 바디감이 달랐다.
내 핸드 드립 솜씨는 일말의 검증도 받은 바 없으나, 호기심 차원에서 집에서 주욱 써왔던 칼리타 서버 말고, 고노(Kono) 서버도 한번 써보려고 결심했다.  

제공 받은 이디도(Ethiopia Idido). 

2013년 2월 18일 월요일

0215 유럽단편영화제


2월15일(금). 건국대 KU씨네마테크에서 1회 유럽단편영화제(2013.0215~0221 행사를. 뒤이어 KU시네마트랩에서 0222~0224 까지)한다 해서 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옴. 

극장에 좌석을 잡자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예상 외로 대사 인사말과 긴 소개가 있어서 지루했다. 예술 축제에서 이런 의전은 축약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개막작이 단편 4편이었지만 뒤에 약속이 잡혀서 마지막 한편을 보지 않고 나왔다. 
10~20분 짜리 짧은 시간에 플롯을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극 구성을 공부하거나 영화연출을 공부하는 이에겐 교보재가 될 수도 있겠더라. 결과적으로 개막식장을 나온 후 재작년 제자가 기획했다는 전시회 오프닝이 열리는 창덕궁 근처 인미공으로 이동했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영상연출을 한다는 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제를 보는 초대권을 넘겼다. 이날 술마시다가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서 귀가. 아침에 깨니 오랜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 유럽단편영화제(eusff)의 상영 정보가 올려진 사이트와 트위터가 있음.  



KU씨네마테크





인미공

제자가 공동 기획한 전시, '( )를 위한 무대' (2013.0215~0316 인미공) 

2013년 2월 8일 금요일

0207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


2월7일(목) 왕십리CGV 14시.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 Hansel and Gretel: Witch Hunters> 시사회. 
(* 시사회 입장권을 나눠주면서 8기가 usb도 선물 받음) 


중무장한 남녀 커플(남매)의 정면이 실린 영화 포스터가 강인한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 >은 그 원전을 사탕으로 지은 집이라는 감미로운 독일 동화에서 차용했다는 배경 때문에 관람 전부터 큰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피가 철철 넘치는 마녀 사냥의 주역으로 장성한 동화 속 남매를 지목한 점부터가 실은 반전이라면 반전일 텐데, 좀 안일한 고전 차용처럼 느껴진다.

무적의 영웅을 내세운 상업 영화의 새롭지 않은 관행을 아낌없이 유지하되 주역만 고전 동화 속 남매로 차용한 게 전부여서다. 
현대를 배경으로 삼는 액션물처럼, 마녀를 의자에 결박해서 '취조'를 하기도 하며, 개조해서 만든 전기 충격기마저 등장하고, 그레텔이 쏘는 화살은 거의 기관총처럼 발사되며, 젊은 헨젤과 그레텔은 선한 영웅적 기행을 보일 뿐 아니라 이들을 연모하는 여성팬과 남성팬의 노골적인 러브콜까지 받는다. 덕분에 꽤 농염한 배우들의 인체가 연신 노출 되는데 딱 거기까지다. 관음의 기쁨을 주기보단 식상하고 감질나다는 느낌이 든다. 세게 나갈꺼면 진짜 좀 세게 나가거나.... 영화에서 희생되는 인간이나 마녀의 죽음은 거의 예외 없이 온몸에서 살점과 피가 펑하고 터져나오는 잔혹사로 귀결되기 마련인데, 현대적 액션물이 폭력을 극단으로 연출할 때 쓰던 방식 그대로다. 그런 반복적인 잔혹사를 지켜보면서, 기성 영화들이 구축한 폭력의 무한 경쟁 때문에, 이미 허구적 폭력의 상한선에 도달해서 영화가 다루는 시대가 언제이건 폭력의 모양새는 거의 천편일률 평준화된 느낌을 받았다. 한데 3D로 확장된 울트라 폭력과 온몸을 터트리는 살해 장면마저 너무 잦은 반복 탓에 긴장감이나 차이점을 만들지 못한다. 폭음과 화염으로 휩싸인 배경 앞으로 주인공이 덤덤하고 천천히 걸어나오는 바로 그 장면! 이미 충분히 진부하지만 그것이 '헨젤과 그레텔'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에 그 장면은 훨씬 더 클리세하다.  

 CGV에서 나눠준 3D 관람용 안경과 배급사에서 준 보도자료. 




영화 속 그레텔도 영화 밖 20대 여배우 제마 아터턴(Gemma Arterton)의 관능미를 아낌없이 수용.  

2013년 2월 5일 화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대중장식 (씨네21)


* <씨네21>(891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66회분.

  

견고한 장면의 양면성





상좌. 리허설 중인 틸러 걸들 1930년대
상중. 정조대왕 능행도 -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1795년
상우. 북한의 매스게임 '아리랑'을 찍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 평양 I, 2007년
하. 중국 건국 60주년 군사퍼레이드 연습 중인 군인들 2009년 (REUTERS Joe Chan)
  

“추상이 그러했듯이, 대중 장식도 양면성을 띤다.”
늘씬한 여성으로 편성된 무용수들이 기계처럼 일치시킨 팔 다리의 기하학적 인체미. 1920년대 유흥문화의 산물이던 틸러 걸(tiller girl)의 장식적 군무를 관찰한 문화 비평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가 내린 평가다. 그가 대중 장식에서 양면성을 주시한 내막은 여성 무용수들의 총화가 탄성 어린 표면적 볼거리를 만들지만, 기하하적 질서의 화려함 뒤로 무용수 개개인의 정체성은 지워지는 이면이 있어서다. 추상적 형식미를 완성하려고 내용을 소멸시켰다는 얘기. 이런 사정이야 어떻건 인체로 구성된 장식적 아름다움에 대중은 열광적 환호를 보낸다. 전체주의의 산물인 대중 장식이 강인한 연대기를 이어오는 배경일 것이다.

극소수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조정하여 얻어낸 대중 장식에, 대다수 피지배 계층이 지지를 보내는 역설. 이 현상은 가까이는 대중 장식의 역설이지만, 멀리 보면 현실 정치가 작동하는 보편적인 생리다. 대중에게 손쉬운 환호와 위안을 안기는 이점 때문에 대중 장식은 기득권이 신뢰하는 정치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 궁중 기록화와 의궤도(儀軌圖)는 조정의 주요 행사를 궁중 화원들이 완성시킨 역사적 시각 기록물이다. 이 그림들은 화원들의 집단 창작의 산물이어서 화원 개개인의 개성은 견제 받고 규범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통일된 화풍을 낳는다. 인물을 좌우로 줄지어 대칭시킨 안정적 구도를 정면 부감으로 바라보는 궁중 기록화는 단순한 사료적 가치를 떠나, 왕실의 권위와 안정성을 보장하는 문양처럼 느껴진다. 

지난 역사를 통해 전체주의의 패악을 공동체가 충분히 학습했지만, 서열 중시를 향한 집단적 합의, 남성미에 대한 숭상, 애국심의 연대감, 동일한 색으로 전체가 통일된 유니폼이 있기에, 군대는 현대 사회에서 대중 장식의 전체주의를 견인하기에 가장 유리한 거점이다. 군대 열병식이 현대적 대중 장식의 정점이 된 이유다. 절도 있게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는 군인들의 인체, 서열 확인을 위한 장황한 의례와 절차, 개인성을 지우고 전면으로 부상한 숭고한 대의명분, 정당화된 폭력 미학까지. 군대 존립의 허약한 명분은 열병식의 조밀한 인간 패턴 속에 잊혀 진다. 

대중 장식의 출중한 볼거리를 부인하긴 어렵다. 대중 장식은 이성 판단을 마비시킬 만큼 중독성이 강하며, 그 미학적 중독의 대가도 크다. 군중으로 촘촘하게 짜인 대중 장식이 큰 흐름처럼 밀려오는 장면은 시각적 안도감과 압도하는 위력을 동시에 체험하게 만든다. 안도와 위압이 뒤엉킨 감정은 지배자의 독재도 정당화 시킨다. 대중 장식의 양면성이다. 숭고는 웅대한 자연의 추상 앞에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정리되곤 한다. 인공미를 배제한 자연의 위대함과 연결시킨 미학 개념이다. 한편 헤겔은 숭고를 절대 왕권이 보장된 동양권 예술에서 쉽게 관찰 된다고 설명한다. 견고한 대중 장식에 제압되는 감정은 자연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제조한 현대적 숭고 같다. 이때 숭고는 무서운 양면성을 띤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2013년 2월 3일 일요일

0202 김희욱(175) 선무(담) Generation Self(옵시스아트) 고명근(선컨템포러리) 사이먼 후지와라 + 제시 존스(아트선재센터)


이런 저런 자리에서 만날 적마다 말버릇처럼 '전시 순회' 얘기를 나눴던 일부 학생들과 작정하고 하루 날 잡아 전시장을 돎.



0202(토) 
김희욱 '논픽션의 픽션(2013.0202~0217 갤러리175)
선무 '뭐하니' (2013.0202~0216 갤러리 담)
김영롱, 나나, 서한겸, 이은정, 임이혜 'Generation Self(2013.0118~0208 옵시스아트)
고명근 '환상 공간' (2013.0119~0210 선컨템포러리)
사이먼 후지와라 (2013.0202~0324 아트선재센터)
제시 존스 'The other north 또 다른 북(北)(2013.0202~0324 아트선재센터)   



김희욱(175)
 '고독'이란 제목을 단 혼합매체 설치물 

 전시장에 비치된 굉장히 짧은 평문이 적힌 A4용지를 집어와서 후에 읽고 있자니, 필자가 작품을 보면서 진심으로 느낀 바를 썼을지 궁금했다. 아니면 작가의 구술을 듣고서 이론전공자답게 과도한 살을 붙인 건지도. 


선무(담)

 밥집에 가서 평범한 기호(嗜好)의 위력에 관해 얘기 나누던 중 거론 된 작품 중 하나.



Generation Self(옵시스아트)
 함께 전시 순회를 한 학생 7명 중 일부 

 어디서 많이 봤다고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홍대 거리에 많이 그려진 그래피티'의 작가라고 했다. '나나'라는 예명을 쓴다나. 직설적 성향의 젊은 남성 작가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 작가라함. 

 전시장 옵시스아트 1층 통유리를 통해 바라본 외부


고명근(선컨템포러리)
 밥집에 가서 평범한 기호(嗜好)의 위력에 관해 얘기 나누던 중 거론 된 작품 중 또 다른 하나.


사이먼 후지와라(아트선재센터)


 어쩌라고?



 Patrick Heron, Horizontal Stripe Painting, November 1957 - January 1958 



제시 존스(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에서 같은 날 개막한 사이먼 후지와라와 제시 존스는 모두 영상물의 비중이 높다(제시 존스는 전부라고 보면 되고 상영시간이 매 작품당 무려 1시간 가량 한다) 일행도 있는 데다가 개막식날 60분짜리 영상물 2편을 보고 오긴 어려워서 조금 둘러보다가 왔다. 더구나 5분 가량 지켜본 바로는 구미가 당기지 않기도 했고. 상황 설정극을 표방해서 배우를 출연시켜 진행하는 연극적 구성의 영상 작품에 매력을 느낀 기억이 나는 많지 않다. 이런 부류의 영상물을 기획자가 전부 감상하고 평가한 후 초대 작가로 결정할지 늘 궁금하다. 

사이먼 후지와라는 '게이, 작가의 출연, 개인 고백이 토대인 극의 구성,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과거 한 순간 설정, 혼혈아,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질감 회고'에 이르기까지 기획자의 호감을 잡아 당길만한 요인을 두루 갖췄다. 그렇지만 실마리만 던져놓는 짐짓 쿨하게 종영하는 영상물 <거울 단계>는 사이먼 후지와라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극소수에게만 호소력을 행사할 것 같았다. 함께 본 학생 중 퍼포먼스에 주력하는 일부 학생은 자세한 이유를 내놓진 못했지만 맘에 든 영상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