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9일 수요일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월리를 찾아라 (씨네21)

* <씨네21>(922호)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82회분.  '브랜드 시리즈 7탄'  월리를 찾아라.



월리의 숨은 원리



좌상. <월리를 찾아라 Where's Wally?>의 전형적인 화면 구성
좌하. ‘월리를 닮은 인원의 최다수 운집’에 관한 기네스북 기록을 깬 영국 더블린 행사. 3872명이 운집했다. 2011년
우. 군중 속에서 단짝을 우연히 만나는 설정 때문에 <월리를 찾아라>가 인용되는,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2011년



군중으로 빼곡한 불특정 장소 어딘가에 숨겨진 주인공 찾기 놀이, <월리를 찾아라>는 숨은 그림 찾기의 전통을 계승한 삽화집이다. ‘월리’ 시리즈는 명시적인 스토리라인을 탑재하지 않고도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무수한 익명의 디테일로 화면을 메운 고밀도 평면의 압박감은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이룬 성과를 닮기도 했다. 화면에 이야기를 담지 않은 구조마저 닮았다. 이 책이 아동용 도서인 이유는 균질한 화면의 즐거움에 의존하고 성가신 본문 읽기를 과감히 누락시키되, ‘주인공 찾기’라는 선명한 과제를 독자에게 던져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월리는 정감 어린 캐릭터다. 검정색 동그란 뿔테안경. 청바지와 대비되는 빨간 하얀색 줄무늬 상의. 동일한 줄무늬의 털실 모자. 얼핏 눈에 띠기 수월한 조건을 구비했지만, 유사한 복장을 착용한 인물들을 화면 여기저기 심어놔서 독자는 월리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 이렇게 길을 잃고 헤매는 과정에서 세상의 천자만태를 구경 한다. 그것이 ‘월리’ 찾기의 숨은 묘미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악당으로 출연하는 물음표(?) 지팡이를 쥔 수수께끼 광 리들러는 종적이 묘연한 월리-지팡이를 쥐고 등장할 때가 많다-의 전신처럼 보인다.

2011년 늦봄 영국 더블린의 한 광장에 월리의 캐릭터를 흉내 낸 4천명에 가까운 인파가 운집했다. 이로써 ‘월리 닮은 인원의 최다수 운집’에 관한 기네스북 기록이 또 다시 깨졌다. <월리를 찾아라>를 쓴 자국 삽화가를 향한 영국민의 오마주인지도 모른다. 플래시 몹을 차용한 이 행사는 ‘군중에 파묻혀 식별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월리를 찾아서>의 논리를 거국적으로 전복시키는 해프닝이며, 책 속에서 월리를 찾던 독자들이 현실 공간으로 자진해서 동원되어 월리의 무수한 존재감을 커밍아웃 시키는 관객참여형 예술이다.

규칙을 아는 이들끼리 모여 일상의 정적을 일시적으로 교란시키는 플래시 몹의 원리처럼, 이 행사는 가상 인물 월리를 매개 삼아 대중의 분산된 자기 유희가 연대감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어쩌면 이는 <월리를 찾아라>에 독자가 몰입하게 되는 본질을 발전시킨 사건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월리는 무수한 독자들처럼 그저 평범한 복장의 일반인이지만, 군중 속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인물인 점에서 유명인사와 대등한 반열에 오른다. 월리의 복장을 한 4천여 인파가 가담한 집단 유희는 일반인의 소외감이 수배 대상으로 지목된 ‘특별한 일반인’ 월리를 통해 대리 해소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월리의 줄무늬 복장은 유쾌하게 변형된 죄수복을 닮았다.




반이정: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 <중앙일보> <한겨레21> <시사IN>에 미술비평을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평을 연재. 자전거 7대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광.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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