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부탁이니, 과잉 친절 행정은 제발 멈춰주세요” (한겨레 HOOK)

* 한겨레 오피니언사이트 '훅 Hook'에 무려 지난 3월 올려진 원고.  왜 이렇게 늦게 포스팅 하냐면 원고를 보낸 후 HOOK에 원고가 올라오질 않기에 원고 담당자가 등록하는 까먹었다고 믿어서, 달리 항의하지 않고 나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다른 매체에서 청탁이 들어와서 '묵혀둔' 원고를 보내려고 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원고가 덜컥 등록 되어있지 뭔가! 원고 주기로 한 매체를 위해 완전 새 원고를 열심히 구상해야할 판.



“부탁이니, 과잉 친절 행정은 제발 멈춰주세요”


 반이정 | 2013.03.15 



오늘 하루도 힘차고 즐겁게 SMILE~ ^-^ 파이팅하세요! – SKT 아무개 :) “

휴대전화 정비 받을 일이 생겨서 방문한 통신사 고객 센터에서 접수 업무를 맡은 직원 아무개가 그 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 총 2회 내게 보낸 문자다. 정비를 무사히 마치고 나설 때 그 직원은 고객평가 전화가 걸려오면 잘 부탁드린다는 부탁을 덧붙였던 게 떠올랐다. 그런데 그런 부탁을 애써 하지 않아도, 그리고 안부를 묻는 요식적인 문자를 2차례 발송하지 않았어도, 그 직원이 접수 과정에서 보인 친절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충분했다. 아마 고객 평가를 민감하게 수용하도록 조성한 사내 분위기 때문에 전 사원이 방문객 전원에게 유사한 부탁을 하거나 과잉 친절을 베푸는 것 같았다. 고객센터를 미소와 친절로 충만하게 하겠다는 사측의 의지를 탓할 순 없다. 그렇지만 정해진 업무 이상의 웃음 봉사를 추가로 강요하는 게, 서비스업 직종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일반 상식은 별개로 하더라도, 업무에 대한 정확한 수행 이상을 베푸는 게 관행이 되면, 방문객 가운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은 괜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이른바 진상고객 행세까지 정당하다고 믿는다.

선한 의도를 표방하는 서비스는 효과야 어떻건 전파력을 타고 확산된다. KTX 객차 안에서도 과잉친절은 목격된다. 객차 사이를 오갈 때 통로를 이동하는 승무원들은 문을 여닫을 때마다 객실을 향해 몸을 돌려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이런 불필요한 요식이 왜 있어야할까? 무수한 승무원의 머리 숙인 인사는 받는 사람처지에서도 부담스럽다. 좌석에 앉아 자거나 떠들기 바쁘거나 생각에 잠겨 승무원의 인사를 의식할 틈조차 없는 승객이 태반인데, 왜 승무원에게 이런 예절 교육을 시킬까. 여승무원에게 뭔가 문의라도 하면, 여승무원은 예외 없이 무릎을 꿇어 낮은 자세로 고객의 말을 청취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굴종 모드’로 변신하더라. 더 황당했던 건 같은 상황에서 남자 직원은 선채로 답변하더라는 것. 듣자하니 일본의 기차에서도 유사한 직원 예절을 볼 수 있다던데, 이런 과잉 친절까지 일본을 벤치마킹했어야 할까. 의도가 선한 고약한 서비스는 폭넓게 감염되고, 이런 비정상을 공동체가 자연스런 정상으로 수용하고 만다. 맘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연출된 전시용 친절이다.

과잉친절의 민폐는 공기관도 둘째라면 서럽다. 내가 사는 관악구는 길가에 물을 살포하는 물청소 차량이 주택가에 들어서면서 ‘물청소 차량이 지나가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트는데, 다가오는 차량을 쳐다보기만 해도 뭘 하는지 명백히 알 수 있는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그 상황을 높은 데시벨의 안내 방송으로 반복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을 바보로 아는 건가? 봄철이 찾아왔으니 한동안 고요했던 이 동네에 또다시 불필요한 소음 립서비스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지하철역(5678 서울 도시철도) 승강장에 서있던 중,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 ‘신청곡을 주문하면 틀어준다’는 내용이 나오는 걸 들었다. 이 과도한 친절 행위는 또 뭔가 싶어서 검색하니 서울도시철도가 운영하는 스마트보이스 방송이란 데가 있다는데, 아침 정오 저녁 무렵 각각 시간을 정해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단다. 대체 이런 기상천외한 발상은 또 누구 머리에서 나오는 걸까. 승강장 대합실, 통로 등에서 모든 승객에게 방송 청취를 강요하는 발상부터가, 요즘처럼 음악 청취나 정보 취득을 개인 미디어로 해결할 수 없었던 구시대 대중교통 문화에나 어울릴 발상이다. 아마도 서울도시철도의 무슨 회의석상에서 누군가가 묘안이라 굳게 믿고 내놓았을 것이고, 취지가 나쁘지 않으나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해서 시행된 게 아닐까. 취지만 선하면 효과야 유명무실해도 일단 세금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친절 행정’의 핵심이고 전염성이다.

서울도시철도의 스마트보이스 운영에 관해 공중파 방송이 취재한 내용을 보니, 신청곡을 들을 수 있고 지하철 민원을 처리해줘서 자주 듣는다는 어떤 승객의 인터뷰를 내보내더라.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마저 승강장이 음악다방 같은 분위기로 탈바꿈 해주길 바라는 남다른 취향의 어떤 승객이 있을 줄로 안다. 그렇지만 그 반대편에 다만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주변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싶은 어떤 승객도 있다. 전시 행정의 산물인 라디오 방송을 서울도시철도가 향후에도 강행한다면, 내가 그것까지 말릴 순 없다. 다만 처음의 선의를 유지할 의사가 있다면 지하철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싶은 청취자만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옳다. 지금은 스마트 시대다.

5678 서울철도께.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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